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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로 가수 현미 별세...자택서 쓰러진채 팬클럽 회장이 발견 (프로필, 밤안개 가사)
    별별정보 2023. 4. 4. 21:07

     

    안녕하세요 비비입니다. 원로 가수 현미의 별세 소식 알려드릴게요. 개그맨 김영철 씨가 밤안개를 부르는 모습을 성대모사 개그로 자주 보여줬었는데요. 저도 그때 밤안개라는 노래를 접했었어요. 연세가 많으셔도 빵빵 터지는 예능감으로 예능 프로에도 자주 나오셨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가버리셨어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가 4일 오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85세 경찰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자택에 쓰러져 있는 것을 이날 오전 9시37분쯤 팬클럽 회장 김 모 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인근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한 달 전 방송에 나오실 때만 해도 건강한 모습이었다고 하는데요. 아직 사망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팬클럽 회장은 전날 밤에도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셨다고 합니다. 연세가 많으시니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하지만 곧 밝혀지겠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수 현미 프로필>

     

    현미 玄美 Hyunmi

    가수
    본명 김명선 (金明善)
    출생 1938년 1월 28일 평안남도 강동군 고천면 맥전리
    사망 2023년 4월 4일 (향년 85세)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자택
    국적 대한민국
    학력 덕성여자대학교 (가정학 / 명예학사)
    혈액형 O형
    가족 어머니 박영빈, 언니 김화선, 오빠 김명준, 여동생 김길자, 김명자, 김명옥, 아들 고니, 아들 이영준, 둘째 며느리 원준희, 조카 노사연, 한상진
    종교 개신교
    데뷔 1957년 미 8군 번안곡 'O Danny Boy'


     

    <가수 현미 생애>


    8남매 중 셋째로 1.4 후퇴 때 부모, 6남매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7년 미 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펑크 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는 드물게 있었던 여대생 가수라는 메리트를 살려 현 시스터즈라는 그룹으로 활동했고 그중에서 센터를 담당했다.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으로 음반을 만들어줬고 현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상 데뷔곡인 셈. 당시 곡을 녹음하던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다른 가수들과는 다르게 몇 발자국 떨어져서 곡을 녹음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1962년 이봉조와 1집을 작업하며 미국의 대가수 냇 킹 콜의 곡(It's a Lonesome Old Town)에 현미 본인이 직접 작사한 가사를 입혀 '밤안개'를 발표, 스타덤에 오른다. 사실 본래 '밤안개'가 타이틀곡이 아니었으나 타이틀 곡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보다 인기가 많아지자 뒤늦게 교체하여 재발매했고 대성공이었다.

    1965년 김기덕 감독 연출,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의 주제곡을 불러서 연달아 히트했다. 영화 또한 당대 최고의 제작진과 스타가 등장해 히트했고, 이봉조가 작곡한 '떠날 때는 말없이'도 이봉조와 현미의 협업으로 히트했다. 이는 당시 60년대의 히트 공식이었다. 실제로 이 곡은 이미자가 선정한 60년대를 대표하는 3곡 중 하나로 선정된 곡이다. 미군 무대 데뷔이래 60년대 재즈 팝을 불렀던 현미는 1968년 이봉조 작곡집 바람을 부르며 또다시 히트작을 내놓는다. 다만 이 시기에 빠른 템포와 재밌는 가사가 돋보이는 '몽땅 내 사랑'과 '두사람', '애인'도 연달아 히트했으며, 한국적인 엔카풍의 '무작정 좋았어요'도 부르며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며 60년대 초중반에 이어 후반까지도 최고의 스타 반열을 유지했다. 1968년 같은 해 '보고 싶은 얼굴'이란 곡을 발표해 이산가족의 아픔을 표현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당시 주로 이봉조가 만든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여러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중에서도 이봉조가 해외 국제가요제 출전에 집중하던 때에 그리스 국제 가요제에 현미와 함께 출전해 '별'로 주요부문에 수상하며 국내외 중저음의 허스키한, 강한 성량의 보컬 능력도 인정 받았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에 힘 입어 미국 레이건 대통령 취임 파티에 초청받아 한국 대표 가수로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인지도가 전무했던 동양인 중년 가수가 미국의 대통령 앞에서 노래를 부르자 연달아 기립박수와 앵콜이 이어져 계획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곡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공연은 주로 가스펠 위주로 불렀다고 한다.

    70년대 후반부터는 가수 생활이 뜸해지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는 이봉조와의 별거로 생활비를 위해서 국내 최초로 '현미 노래교실'을 만들어 성공가도를 달렸고 예능 출연을 통해서 재치 있는 입담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봉조의 유작인 '왜 사느냐고 묻거든'과 2001년 '아내'를 발표하며 히트시켜 현미 독자적으로 가수로서 실력을 입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전에는 재즈, 팝 풍의 보컬로 한국가요, 팝을 불러 히트 쳤다면 90년대 이후부터는 성인가요 트로트로 전향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데뷔 50주년 앨범을 발매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고 한국 최초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50주년 기념 앨범과 공연을 발표하자 실제로 패티김이 전화를 걸어 "형님은 노래하는게 질리지 않냐?"며 "대단하다"라고 축하했다고 한다. 현미 자신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노래를 부를 생각이라 밝혔으며, 사망하기 전까지도 특유의 입담과 재치로 주로 외부행사 및 예능 위주로 출현했다.


     

    <밤안개 가사>

     

    밤안개 - 현미
    밤안개가 가득히 쓸쓸한 밤거리
    밤이 새도록 가득히 무심한 밤안개
    님 생각에 그림자 찾아 헤매는 마음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나는 간다
    (간주)
    그 옛님을 찾아 주려나 가로등이여
    밤이 새도록 하염없이
    나는 간다 나는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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